신재민 (1958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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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신재민은 1958년 충청남도 서천군 출생으로, 언론인 출신이며 이명박 정부에서 문화체육관광부 제1차관을 역임했다. MBC 기자, 한국일보 정치부장, 주간조선 편집장, 조선일보 부국장을 거쳐 이명박 대선 캠프에서 활동했다. 문화체육관광부 장관 후보로 지명되었으나, 인사청문회 과정에서 위법 혐의로 자진 사퇴했다. 이후 뇌물 수수 혐의로 구속되어 징역 3년 6개월을 선고받았다. 서울대학교 정치학과를 졸업했으며, 부인은 MBC 아나운서 출신 윤정숙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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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재민 (1958년) - [인물]에 관한 문서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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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직자 정보 | |
이름 | 신재민 |
국가 | 대한민국 |
대통령 | 이명박 |
출생일 | 1958년 9월 29일 |
출생지 | 대한민국 충청남도 서천군 |
전임 | 김장실 |
후임 | 모철민 |
총리 | 한승수 정운찬 윤증현(국무총리 권한대행) |
국적 | 대한민국 |
직책 | 제1대 문화체육관광부 제1차관 |
임기 | 2009년 4월 27일 ~ 2010년 8월 16일 |
장관 | 유인촌 |
학력 | 서울대학교 정치학 학사 |
경력 | 한국일보 사회부 부장 조선일보 편집국 부국장대우 한나라당 중앙선거대책위원회 메시지국장 직무대행 |
정당 | 무소속 |
배우자 | 윤정숙 |
자녀 | 3녀 |
2. 언론인 경력
충청남도 서천군 출신인 신재민은 1981년부터 1984년까지 MBC 기자로 활동했다.[7] 이후 한국일보와 조선일보에서 정치부장, 주간조선 편집장, 부국장 등을 역임하였다.
2. 1. 한국일보 기자 시절
그는 1985년 한국일보 기자로 재직하던 시절, 독극물 협박 사건 취재로 이종구 기자와 함께 한국기자협회에서 시상하는 한국기자상(취재보도부문)을 수상하였다. 1997년 2월까지 한국일보 정치부 차장으로 근무하였다.1990년 그는 법무부가 보고자료에서 80년대를 반성하는 모습을 보인 데 대해, 한국일보 칼럼을 통해 이는 "큰 변화"이지만 "87년 6월 수많은 학생 시민들이 길거리로 나오지 않을 수 없게 했던 이유에 대한 반성이 없고, 권위주의 체제에서 억눌렸다 한꺼번에 분출된 각계의 욕구를 「불법ㆍ무질서의 노정」이라고만 매도하는 경직된 시각도 여전하다"며 "전횡적인 정치권력에 끌려다니면서 법무ㆍ검찰의 생명인 민주주의의 법정신을 포기한 점"이 5공 시절의 법무부를 청산함에 있어 가장 큰 문제라고 지적했다.[10]
김영삼 대통령 후반이던 1996년, 그는 "김 대통령이 누구를 마음에 두고 있을까"를 사람들이 궁금해하는 것을 두고 "우리 현실정치는 아직도 사실상 지명, 사전조정, 줄서기, 편가르기 등 구태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고 비판했다.[11]
1997년 2월, 그는 워싱턴 특파원으로 발령나게 된다. 1998년에 그는 선거법 위반으로 국회의원직을 사퇴하고 워싱턴으로 떠났던 이명박을 골프 라운딩을 통해 위로하며 교류했다.[12][13][14]
워싱턴에서 귀국한 그는 한국일보 주간국장, 사회부장을 거쳐 논설위원이 된다. 신재민은 이 당시 변호사를 늘려야 한다고 주장했고,[15] 제왕적 대통령의 탄생을 막아야 한다고 목소리를 높였으며,[16] 국정원이 국내정보 수집활동을 계속하는 것은 문제라고 지적했다.[17] 또 한나라당이 2002년 대선에서 패배하자 "다음 선거가 있을 때까지 뼈를 깎는 구조조정과 함께 새로운 브랜드를 내놓지 않으면 또 실패할 것"이라며 한나라당의 개혁을 촉구하기도 했다.[18]
이후 그는 2003년에서 2004년까지 한국일보 정치부장을 맡았다. 한국일보 정치부장으로 있던 시절, 그는 청와대와 그 주변에서 언론사로 전화하고 정보원을 상주시키며 조사하는 것을 비판하기도 했다.[19] 그러던 그는, 2004년 편집부 부국장을 끝으로 한국일보를 떠나 조선일보로 자리를 옮기게 된다.
2. 2. 조선일보 기자 시절
신재민은 1985년 한국일보 기자로 재직하던 시절, 독극물 협박 사건 취재로 이종구 기자와 함께 한국기자협회에서 시상하는 한국기자상(취재보도부문)을 수상하였다. 1997년 2월까지 한국일보 정치부 차장으로 근무했다.[10]1990년 그는 법무부가 보고자료에서 80년대를 반성하는 모습을 보인 데 대해, 한국일보 칼럼을 통해 이는 "큰 변화"이지만 "87년 6월 수많은 학생 시민들이 길거리로 나오지 않을 수 없게 했던 이유에 대한 반성이 없고, 권위주의 체제에서 억눌렸다 한꺼번에 분출된 각계의 욕구를 「불법ㆍ무질서의 노정」이라고만 매도하는 경직된 시각도 여전하다"며 "전횡적인 정치권력에 끌려다니면서 법무ㆍ검찰의 생명인 민주주의의 법정신을 포기한 점"이 5공 시절의 법무부를 청산함에 있어 가장 큰 문제라고 지적했다.
김영삼 대통령 후반이던 1996년, 그는 "김 대통령이 누구를 마음에 두고 있을까"를 사람들이 궁금해하는 것을 두고 "우리 현실정치는 아직도 사실상 지명, 사전조정, 줄서기, 편가르기 등 구태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고 비판했다.[11]
1997년 2월, 워싱턴 특파원으로 발령났다. 1998년에 그는 선거법 위반으로 국회의원직을 사퇴하고 워싱턴으로 떠났던 이명박을 골프 라운딩을 통해 위로하며 교류했다.[12][13][14]
워싱턴에서 귀국한 그는 한국일보 주간국장, 사회부장을 거쳐 논설위원이 되었다. 신재민은 이 당시 변호사를 늘려야 한다고 주장했고,[15] 제왕적 대통령의 탄생을 막아야 한다고 목소리를 높였으며,[16] 국정원이 국내정보 수집활동을 계속하는 것은 문제라고 지적했다.[17] 또 한나라당이 2002년 대선에서 패배하자 "다음 선거가 있을 때까지 뼈를 깎는 구조조정과 함께 새로운 브랜드를 내놓지 않으면 또 실패할 것"이라며 한나라당의 개혁을 촉구하기도 했다.[18]
이후 2003년에서 2004년까지 한국일보 정치부장을 맡았다. 한국일보 정치부장으로 있던 시절, 청와대와 그 주변에서 언론사로 전화하고 정보원을 상주시키며 조사하는 것을 비판하기도 했다.[19] 2004년 편집부 부국장을 끝으로 한국일보를 떠나 조선일보로 자리를 옮겼다. 조선일보에서 2004년 편집국 기획탐사부 부장, 2005년부터 2006년까지 주간조선 편집장으로 근무하였다. 2006년 출판국 부국장을 마지막으로 이명박 제17대 대통령 후보의 대선캠프에 합류했다.
3. 정치 경력
1958년 충청남도 서천군 출생으로, 1981년부터 1984년까지 MBC 기자로 활동했다.[7] 이후 한국일보 정치부장, 주간조선 편집장, 조선일보 부국장을 역임했다. 이명박 대통령과의 인연은 1998년 이명박이 선거법 위반으로 국회의원직을 사퇴하고 워싱턴으로 떠났을 때 골프 라운딩을 통해 위로하며 시작되었다.[12][13][14]
3. 1. 이명박 대선 캠프 활동
2006년 말 이명박 선거 캠프에 합류하여 메시지 단장으로서 각종 연설문, 인터뷰, 축사, 기고 등을 담당했고, 언론·정치권·법조계 등의 동향을 파악해 이명박에게 자주 보고한 것으로 알려졌다.[14] 경선과 대선 당시 이명박 대통령과 거의 매일 아침 선거전략을 의논했다고 한다.[20] 2007년 12월 제17대 대통령 당선자 비서실 정무기획1팀 팀장을 지냈다.[8]3. 2. 문화체육관광부 차관 시절
이명박 정부에서 문화체육관광부 제1차관을 역임하였다.[7]2008년 3월, 기자실 정상화의 상징적 조치로 경찰청 기자실을 우선 복원할 것을 밝혔다. 이명박 정부와 언론의 관계는 법으로 규율하거나 정립할 사안이 아니며, 통제나 간섭도 있을 수 없다고 밝혔다. 또한 지난 해 총리령을 폐지하여 공무원에 대한 취재접근권도 보장하겠다고 밝혔다.[21]
2008년 5월 9일, 정부 관계자들이 모인 언론 대책회의에서 인터넷 상의 각 부처 관련 이슈를 모니터 및 신속 보고하고 부정적 여론이 확산되는 진원지에 대한 적극적인 '관리'가 필요하다고 언급하였다. 같은 날 문화부 홍보지원국 정책 커뮤니케이션 교육 자료집에는 "멍청한 대중은 비판적 사유가 부족. 잘 꾸며서 재미있게 꼬드기면 바로 세뇌 가능." 등의 지침이 담겨 있어 큰 파문을 일으켰다.[22]
2008년 7월 5일, KBS 사장을 해임할 수 있는 권한이 대통령에게 있다는 발언을 해 파문을 일으켰다.[23]
2008년 10월 24일, 국회 문화체육관광방송통신위원회 국정감사장에서 고흥길 위원장 대리로 국감을 진행하고 있던 민주당 전병헌 의원이 "차라리 먼저 팔짱 풀고 답변하라"고 질책하자 "아직도 이 자세가 보기 불편하십니까?"라고 반문해 국정감사가 파행을 빚기도 하였다.[24]
2008년 11월 14일, YTN 구본홍 신임 사장 임명 반대 투쟁에 대해 "일반 기업이라면 노조원들은 열흘 만에 잘릴 일인데 언론사라는 특수성 때문에 더 오래 버티고 있는 것"이라며, "그만두고 다른 회사로 옮기면 될 일인데 정치적인 문제로 만들고 있다"고 발언하였다. 또한 이 자리에서 이명박 대통령이 "(왼쪽으로 치우친) 방송을 가운데 갖다 놓으라"고 말했다고 전하여 언론 장악 의도 논란을 일으켰다.[25]
2009년 2월 13일, 기자 간담회에서 용산 참사로 사망한 민간인들에게 "'철거민', '생존권'이라는 표현을 쓰는 것은 옳지 않으며 생존권과는 무관한 정치적 사안"이라고 주장했다. 또한 권리금을 요구하는 상가 세입자의 행동은 생존권을 따질 문제가 아니라 "이쯤 되면 투기 아니냐"라고 말했다.[26]
2009년 6월 3일, 한국예술종합학교를 방문한 자리에서 문화체육관광부 감사 논란 끝에 전월 사퇴한 황지우 총장을 두고 "황지우 전 총장이 현 정권을 지지하지 않는 것은 사실이지 않은가", "좌파 정부가 집권하면 총장도 좌파에서 나오고, 우파가 집권하면 우파에서 총장이 나와야 한다"며, "정권의 성향에 맞는 인물이 총장을 맡는 것이 당연하다"고 주장하여 한국예술종합학교 교수협의회의 큰 반발을 불러일으켰다. [27] 이런 일은 1933년 독일의 나치 정권이 바우하우스를 해체하고 좌파 예술인들을 숙청했던 사건에 비유되기도 한다.[28][29]
3. 3. 문화체육관광부 장관 후보자 인사청문회 및 낙마
2010년 8월 8일 이명박 정부 개각에서 신재민은 제45대 문화관광체육부 장관으로 내정되었다.[30] 2010년 8월 20일부터 1주일간 지속된 인사청문회에서 탈세 의혹, 4차례의 위장전입, 부동산 투기 의혹, 증여세 탈루 의혹, 배우자의 위장취업 및 배임 의혹, 정당법 위반 등 수많은 위법행위 의혹으로 "의혹 백화점"이라는 별명을 얻기도 하였다.[31] 또한 그는 기자 시절이던 2002년 장상 총리 후보자의 위장전입을 비판한 칼럼을 썼으나, 그 당시 본인은 이미 네 차례에 걸쳐 위장전입을 했던 사실이 밝혀져 국회의원들의 거센 질타를 받았다.[32]8월 29일 오전, 신 내정자는 이명박 대통령에게 자진 사퇴 의사를 전달했고, 청와대는 이를 수용했다.[33]
4. 논란 및 사건
신재민은 한국일보 기자 시절인 1985년 독극물 협박 사건 취재로 한국기자상을 받았으며, 1997년 워싱턴 특파원으로 발령받아 이명박과 교류하기도 했다.[12][13][14] 한국일보에서 주간국장, 사회부장, 논설위원, 정치부장을 거쳐 조선일보에서 주간조선 편집장 등을 지냈다.
2010년 8월 이명박 정부 개각에서 문화체육관광부 장관으로 내정되었으나,[30] 인사청문회 과정에서 탈세, 위장전입, 부동산 투기 등 여러 의혹으로 "의혹 백화점"이라는 별명을 얻으며 비판받았다.[31] 2002년 장상 총리 후보자의 위장전입을 비판했던 그가 이미 네 차례 위장전입을 한 사실이 밝혀져 논란이 되었다.[32] 결국 2010년 8월 29일 자진 사퇴했다.[33]
4. 1. 언론관 관련 논란
1990년 그는 법무부가 보고자료에서 80년대를 반성하는 모습을 보인 데 대해, 한국일보 칼럼을 통해 이는 "큰 변화"이지만 "87년 6월 수많은 학생 시민들이 길거리로 나오지 않을 수 없게 했던 이유에 대한 반성이 없고, 권위주의 체제에서 억눌렸다 한꺼번에 분출된 각계의 욕구를 「불법ㆍ무질서의 노정」이라고만 매도하는 경직된 시각도 여전하다"며 "전횡적인 정치권력에 끌려다니면서 법무ㆍ검찰의 생명인 민주주의의 법정신을 포기한 점"이 5공 시절의 법무부를 청산함에 있어 가장 큰 문제라고 지적했다.[10]김영삼 대통령 후반이던 1996년, 그는 "김 대통령이 누구를 마음에 두고 있을까"를 사람들이 궁금해하는 것을 두고 "우리 현실정치는 아직도 사실상 지명, 사전조정, 줄서기, 편가르기 등 구태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고 비판했다.[11]
한국일보 정치부장으로 있던 시절, 그는 청와대와 그 주변에서 언론사로 전화하고 정보원을 상주시키며 조사하는 것을 비판하기도 했다.[19]
2008년 3월 그는 기자실 정상화의 상징적 조치로 경찰청 기자실을 우선 복원할 것을 밝혔다. 이명박 정부와 언론의 관계는 법으로 규율하거나 정립할 사안이 아니며, 통제나 간섭도 있을 수 없다고 밝혔다. 또한 지난해 총리령을 폐지하여 공무원에 대한 취재접근권도 보장하겠다고 밝혔다.[21] 2008년 5월 9일에는 정부 관계자들이 모인 언론 대책회의에서 인터넷 상의 각 부처 관련 이슈를 모니터 및 신속 보고하고 부정적 여론이 확산되는 진원지에 대한 적극적인 '관리'가 필요하다고 언급하였으며, 같은 날 문화부 홍보지원국 정책 커뮤니케이션 교육에서 사용된 "멍청한 대중은 비판적 사유가 부족. 잘 꾸며서 재미있게 꼬드기면 바로 세뇌 가능." 등의 지침이 담긴 교육 자료집과 함께 큰 파문을 일으켰다.[22]
2008년 7월 5일에는 KBS 사장을 해임할 수 있는 권한이 대통령에게 있다는 발언을 해 파문을 일으켰다.[23] 2008년 10월 24일에는 국회 문화체육관광방송통신위원회 국정감사장에서 고흥길 위원장 대리로 국감을 진행하고 있던 민주당 전병헌 의원이 "차라리 먼저 팔짱 풀고 답변하라"고 질책하자 "아직도 이 자세가 보기 불편하십니까?"라고 반문해, 국정감사가 파행을 빚기도 하였다.[24]
2008년 11월 14일에는 YTN 구본홍 신임 사장 임명 반대 투쟁에 대해 "일반 기업이라면 노조원들은 열흘 만에 잘릴 일인데 언론사라는 특수성 때문에 더 오래 버티고 있는 것"이라며, "그만두고 다른 회사로 옮기면 될 일인데 정치적인 문제로 만들고 있다"고 발언하였다. 또한 이 자리에서 이명박 대통령이 "(왼쪽으로 치우친) 방송을 가운데 갖다 놓으라"고 말했다고 전하여 언론 장악 의도 논란을 일으켰다.[25]
2009년 2월 13일에는 기자 간담회에서 용산 참사로 사망한 민간인들에게 "'철거민', '생존권'이라는 표현을 쓰는 것은 옳지 않으며 생존권과는 무관한 정치적 사안"이라고 주장했다. 또한 권리금을 요구하는 상가 세입자의 행동은 생존권을 따질 문제가 아니라 "이쯤 되면 투기 아니냐"라고 말했다.[26]
2009년 6월 3일에는 한국예술종합학교를 방문한 자리에서 문화체육관광부 감사 논란 끝에 전월 사퇴한 황지우 총장을 두고 "황지우 전 총장이 현 정권을 지지하지 않는 것은 사실이지 않은가", "좌파 정부가 집권하면 총장도 좌파에서 나오고, 우파가 집권하면 우파에서 총장이 나와야 한다"며, "정권의 성향에 맞는 인물이 총장을 맡는 것이 당연하다"고 주장하여 한국예술종합학교 교수협의회의 큰 반발을 불러일으켰다.[27] 이런 일을 두고, 1933년 독일의 나치 정권이 바우하우스를 해체하고 좌파 예술인들을 숙청했던 사건에 비유하는 비판이 있기도 했다.[28][29]
4. 2. 용산 참사 관련 발언 논란
2009년 2월 13일 기자 간담회에서 신재민은 용산 참사로 사망한 민간인들에게 "'철거민', '생존권'이라는 표현을 쓰는 것은 옳지 않으며 생존권과는 무관한 정치적 사안"이라고 주장했다. 또한 권리금을 요구하는 상가 세입자의 행동은 생존권을 따질 문제가 아니라 "이쯤 되면 투기 아니냐"라고 말했다.[26] 이는 사회적으로 큰 논란을 야기했다.4. 3. 한국예술종합학교 관련 발언 논란
2009년 6월 3일, 신재민은 한국예술종합학교를 방문한 자리에서 황지우 전 총장이 현 정권을 지지하지 않는 것은 사실이지 않느냐며, "좌파 정부가 집권하면 총장도 좌파에서 나오고, 우파가 집권하면 우파에서 총장이 나와야 한다"고 주장했다. 그는 정권의 성향에 맞는 인물이 총장을 맡는 것이 당연하다고 덧붙여, 한국예술종합학교 교수협의회의 큰 반발을 불러일으켰다.[27] 이러한 발언은 1933년 독일의 나치 정권이 바우하우스를 해체하고 좌파 예술인들을 숙청했던 사건에 비유되기도 했다.[28][29]4. 4. 뇌물 수수 사건
신재민은 SLS조선의 이국철 회장으로부터 청탁과 함께 1억여 원의 금품을 받은 혐의(특정범죄 가중처벌법상 뇌물수수)와 이명박 대통령 후보 대선 캠프였던 안국포럼 당시 사업가로부터 차량을 제공받은 혐의(정치자금법 위반)로 2011년 11월 구속되었다.[34] 법정에서 신재민은 대가성 없는 친분 관계에 의한 금전적 지원이라고 주장했으나, 2012년 6월 4일 법원은 1심에서 징역 3년 6개월 및 벌금 5300만 원, 정치자금법 위반 혐의에 대해 벌금 100만 원을 선고하고 1억 1093만 원을 추징했다.[35] 재판부는 "고위공무원에 대한 국민들의 신뢰를 크게 손상시켰을 뿐만 아니라 친분관계에 의한 도움이었다고 주장하는 등 반성하지 않았다"고 강조했다.[34]신재민은 항소하였으나, 2012년 12월 14일 항소심에서도 징역 3년 6월과 벌금 5천300만원, 추징금 9천700여만원이 선고됐다.[36] 2013년 4월 11일 대법원 상고심에서도 징역 3년 6월에 벌금 5천400만원, 추징금 1억 1천여만원을 선고한 원심이 확정되어 유죄 판결을 받았다.[37]
2011년 11월 28일, 서울중앙지방검찰청은 SLS그룹 회장 이국철과 관련된 로비 사건과 관련하여 뇌물 수수 혐의로 신재민을 체포했다.
5. 학력
6. 가족 관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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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1]
뉴스인용
문화2차관 “경찰청 기자실 우선 복원”
http://iq.seoul.co.k[...]
서울신문
2009-06-04
[22]
뉴스인용
부적절한’ 정부 언론대책회의 ‘황당한’문화부 자료
http://www.pdjournal[...]
PD저널
2009-06-04
[23]
뉴스인용
신재민 차관, '대통령, KBS 사장 해임권 있다' 초법적 발언 파장
http://www.hani.co.k[...]
한겨레
2009-06-04
[24]
뉴스인용
‘삿대질’ 유인촌, ‘팔짱’ 신재민, 기분나쁜 국감?
http://www.ohmynews.[...]
오마이뉴스
2009-06-04
[25]
뉴스인용
“이 대통령 ‘왼쪽 치우친 방송, 가운데 갖다 놔라’”
http://www.hani.co.k[...]
한겨레
2009-06-04
[26]
뉴스인용
신재민, 용산 희생자에 ‘막말’
http://hani.co.kr/ar[...]
한겨레
2009-06-04
[27]
뉴스인용
신재민 “황지우 전 총장, 현 정권 지지 안 하잖나”
http://www.pdjournal[...]
PD저널
2009-06-04
[28]
뉴스인용
바우하우스와 한국예술종합학교
http://www.newscham.[...]
민중언론
2009-06-06
[29]
뉴스인용
유인촌 장관, 자멸의 길로 가는가
http://www.pressian.[...]
프레시안
2009-06-06
[30]
뉴스인용
李대통령, 김태호 총리-이재오 특임장관 등 파격 개각 단행
http://www.hankyung.[...]
한국경제
2010-08-08
[31]
뉴스인용
‘의혹 백화점’ 신재민, 조현오 자리 위협?
http://www.mediatoda[...]
미디어오늘
2010-08-28
[32]
뉴스인용
신재민 “제 눈에 든 들보 보지 못하고 … ”
http://news.joins.co[...]
중앙일보
2010-08-28
[33]
뉴스인용
신재민 문화.이재훈 지경 장관내정자 사퇴(3보)
http://www.yonhapnew[...]
연합뉴스
2010-08-29
[34]
뉴스인용
신재민 1심에서 징역 3년6월 실형
http://news.khan.co.[...]
경향신문
2012-06-04
[35]
뉴스인용
‘SLS 구명 로비’ 신재민 징역 3년6개월 선고
http://news.donga.co[...]
동아일보
2012-06-05
[36]
뉴스
'이국철 로비' 신재민, 항소심도 징역 3년6월
http://view.asiae.co[...]
아시아경제
2012-12-14
[37]
뉴스
'수뢰' 신재민 前문화부 차관 징역 3년6월 확정
http://www.yonhapnew[...]
연합뉴스
2013-04-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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